"통장이 텅 비어 있으니 마음마저 쓸쓸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테니 한푼 줍쇼'
인터넷커뮤니티에 가끔 등장하는 앵벌이 글이 아니다. 연봉 1억5000만원을 받는 현역 국회의원의 공개 후원금 모집 글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또 이어 "후원금 보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는데 161명망 참여하고 소식이 감감하다"며 "김남국 의원은 다 찼다고 자랑하는데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며 후원을 독촉하는 글을 연이어 게재했다.
하루 뒤인 28일에도 "584명이 2742만원을 보내주셨다"며 "앞으로 재벌의 검은돈에 앵벌이하지 않고 부정부패의 뒷돈에 앵벌이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앞서 지난 16일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한 인터넷커뮤니티 게시판에 "군자금이 부족해 저랑 의원실 보좌진이 굶고 있다. 매일 김밥이 지겹다"며 "염치없지만 후원금 팍팍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노골적인 후원금 모집에 당장 비판 여론이 쏟아진다. 억대의 수당 외에도 입법 활동 지원금과 정책개발지원 경비도 받는 의원들이 '텅빈 통장' '지겨운 김밥'을 거론할 정도면 세비는 어디로 사용되냐는 것이다.

연간 1억5000만원의 세비와 5000만원의 지원 경비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국회의원 1명이 받는 세비는 1년간 총 1억5187만9780원이다. 월로 환산하면 1265만6648원으로, 이는 올해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4118만원)과 비교하면 4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월별로 자세히 뜯어보면, 일반수당으로 675만원을 받는다. 또한 관리업무 수당으로 60만원, 정액급식비 14만원, 입법활동비 313만원을 받는다. 직장인의 상여금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정근 수당은 1월과 7월에 각각 337만원이다. 여기에 쌈짓돈 논란이 있는 특수활동비를 연간 940만원을 지급한다. 회의 출석일을 체크해 산정되기 때문에 의원마다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 특활비는 '비과세 혜택'까지 받는다.
보너스도 있다. 설날과 추석에 약 810만원을 받는다.
의원실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돈도 지원받는다. 물론 위 금액과 별도다. 국회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입법 정책 개발비로 연간 최대 2779만원을 받고, 정책자료 발송비로 520만원, 발간 및 홍보물유인비로 1200만원을 지원받는다. 여기에 사무실운영지원비, 교통지원비, 보좌진 지원비는 별도로 또 나온다. 지원 경비만 연간 5000만원이 넘는 셈이다.
의원당 연평균 1억원이 넘는 정치후원금… 최저도 1004만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매년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 모금내역을 공개한다. 지난 2월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의원직을 상실한 5명의 의원을 제외한 295명의 의원이 모은 총 후원금액은 354억1764만9248원이다. 의원 한사람당 1억2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은 셈이다.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69억4292만9687원을 모았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123억4948만8395원, 바른미래당이 23억5346만6180원, 정의당은 9억868만3921원이다.
의원별로는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1억755만7676원으로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았고, 후원금 모금 활동을 하지 않은 서형수 민주당 의원(0원)을 제외하면 진영 민주당 의원이 1004만9000원으로 가장 적었다.

막대한 세비와 후원금… 진짜 '앵벌'의 이유는 뭘까
진영 행정안정부 장관은 지난 2014년 19대 국회의원 당시 후원자들이 기부한 정치후원금으로 국회 상임위원장 경선 출마를 위한 당내 기탁금 500만원을 냈다. 그리고 기부금 공제를 신청해 75만원을 돌려받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만큼 정치후원금 사용에 제약이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정치후원금의 목적을 정말 '돈'으로만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엄청난 선거비용을 들여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억대 연봉과 지원을 받는데 정치후원금에 '찌질해 질 까닭'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 장관과 같은 케이스는 제외다.
이번 '앵벌이 논란'을 일으킨 정청래 의원은 지난 2016년에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있다. 정 의원이 자신의 의정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국회의원과 나쁜 국회의원을 구별하는 방법과 국회의원들의 유형 등을 기술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정치후원금에 대한 내용도 적혀있다. 시민들에게 소액의 후원금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초심대로 소신대로 국민의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세비가 얼마인데 후원금 타령이냐. 후원 계좌의 액수가 의정 활동을 하고 못하고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을 보면 '열심히 할테니 한푼 줍쇼'라고 적은 이유는 비단 의정활동비가 모자라서가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오히려 후원금 총액은 자신의 지지자와 그 세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후원금 모금을 통해 초선 의원에서 거물급 의원으로 급성장한 이도 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7년 정치후원금을 공개모금했고, 열열한 지지자들의 후원 덕에 그해 3억4858만921원으로 전체 의원 중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 박 의원은 현재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을 가진 민주당 의원 중 한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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