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웹툰 검열] 표현의 자유와 모자이크
강은석 기자
qhsh624@atdaily.co.kr | 2020-11-09 17:13:41
"업로드하기 전에 5번 정도는 다시 체크해봐요. 내용은 물론 편집점이나 자막 중 누군가 보고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요.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놓친 최근 이슈나 논란거리가 있나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다시 체크하죠"
김세훈(28세)씨는 브이로그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반려견과의 소소한 이야기, 출퇴근 시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친한 친구들과의 수다를 간간히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해 일주일에 한 두개씩 제작한다. 유튜브에 넘처나는 직장인의 일상적인 브이로그다.
주변 친구들도 하니까. 그리고 직접 해보니 재미있어서 시작한 이 일은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고, 구독자가 생기면서 오히려 일상의 족쇄가 됐다.
"어쩌다 한 두개씩 달린 댓글이 신기하고 감사해서, 그리고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낄낄거렸던 재미로 했던 브이로그인데, 업로드가 늦으면 제촉하는 구독자들과 내용 중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댓글을 보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 곤 해요"
특히 그를 가장 괴롭히는 부분은 'OOO 때문에 불편하다'라는 댓글이다. 반려견에게 간식을 주며 장난치는 내용이 담긴 브이로그엔 '동물 학대'라는 댓글이 달렸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웃고 떠드는 브이로그에는 '시끄럽다' '주변 민폐'라는 날 선 글도 붙었다.
물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모르는 이들이 만든 오해와 악담은 순식간에 퍼지고 해명할 시간도 없이 '현실 빌런'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내가 좋아서, 친구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던 브이로그인데, 언제부터인가 '혹시 누군가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요. 내 일상과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검열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만간 채널을 닫을까 고민 중이에요"
표현의 자유와 검열의 잣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더 넓히려고 할때 그 생각과 다른 사람이나 작품을 만나면 그들은 그것을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또 계몽하려고 한다. 그런 방법으로는 생각의 확장이 이뤄지지 않는다"
웹툰 작가 주호민이 최근 강화되는 웹툰 검열에 대해 지적하며 한 말이다.
자신이 가진 도덕적 기준은 완벽하고, 그에 미치지 못한 또는 다른 기준을 가진 창작물을 배척하고 자신의 잣대를 강요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설명이나 또는 다른 관점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더 나아가 '악'으로 규정되기까지 한다.
이는 일반 대중은 물론 비평가에도 해당된다.
최근의 웹툰 검열 강화는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내용 중 일부가 여성을 비하했다는 논란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능한 여성 인턴이 남성 상사와의 잠자리 후 취업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암시했다며 몇몇 언론과 시민단체는 그야말로 작가를 향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여성 혐오'라는 낙인을 찍고 사과를 요구하고, 심지어 작가를 겨냥해 '게으르고 둔감하며 배려와 눈치 없이 살아가고픈 남성들이 동일시 하는 대상'이라는 혐오에 가까운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물론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는 반드시 배척되고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 올바름을 추구하는 행위가 자의적 기준에 따라 편향적으로 행해 질 경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이 될 수 있다. 여성의 몸매가 드러나는 차림은 허용될 수 없지만, 남성의 전라 뒷태는 용인되는 이중적 잣대로는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올바른 가위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라는 가사 중 붉은 태양이 북한 지도자를 의미한다는 억지로 금지곡이 됐고, 김추자는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로 정치인들을 비웃었다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당시 수백곡의 노래가 이렇게 불신 풍조 조장, 퇴폐성, 저속한 창법 등을 이유로 듣고 부르는 것조차 금지됐다.
잘못된 잣대는 이렇게 최악의 검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 사회는 이미 30년 전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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