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10조원 배팅] 99의 기대감과 1의 걱정
강은석 기자
qhsh624@atdaily.co.kr | 2020-10-21 17:43:17
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인수한다. 낸드 메모리 시장에서 5위에 머물러 있던 SK하이닉스는 4위인 인텔의 관련 사업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에 이어 단숨에 2위에 오르게 됐다.
20일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SSD와 낸드 단품, 웨이퍼 비즈니스 그리고 중국 다롄팹 등을 90억 달러(한화 10조3104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부문 경쟁력을 강화해 D램에 이어 낸드까지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솔루션 기술을 확보하면서 기업 SSD 등 고부가가치 중심의 3D 낸드 솔루션 제품 생산능력도 갖추게 됐다.
10조원 매머드 계약… 완전한 소유권 이전까지 5년
공시 내용에 따르면 두 회사의 계약체결일은 2020년 10월20일이며, 양수기준일은 2025년 3월15일이다.
우선 SK하이닉스와 인텔은 2021년말까지 주요 국가의 규제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규제 승인을 받으면 2021년에 SK하이닉스는 인텔에 70억 달러(한화 8조192억원)를 1차 지급한다. 이 시점에 인텔은 낸드 SSD사업과 중국 다롄팹 자산을 SK하이닉스로 이전한다.
이후 SK하이닉스는 클로징 예상 시점인 2025년 3월에 잔액인 20억 달러(2조2912억원)을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플레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 R&D 인력 및 다롄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의 소유권이 SK하이닉스로 이전된다.
다만 인텔은 최종 거래 종결 시점인 2025년 3월까지 다롄팹 메모리 생산시설에서 낸드 웨이퍼를 생산하고, 낸드플레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를 보유한다.
2021년에 다렌팹 자산은 SK하이닉스에 넘어가지만 인텔은 계약 완료까지 생산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99의 장미빛 기대감과 1의 걱정
이번 거래는 SK하이닉스와 인텔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D램 부분에 비해 열세였던 낸드 분야를 단숨에 삼성전자 턱밑까지 쫓아갈 수 있게 됐고, 특히 인텔의 강점이었던 기업용 SSD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낸드 시장은 1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SSD시장 규모가 41%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급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에서 과감한 투자로 업계 1위 자리를 단숨에 넘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는 "낸드 사업에서도 D램 사업만큼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내린 과감한 결정"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향후 인텔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접목해 SSD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SK하이닉스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 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텔 입장에서도 CPU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메모리 사업 부문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인텔은 지난해 낸드 메모리의 가격 인하와 판매 부진으로 이미 낸드 메모리 사업 조정을 시사했고, 이 시점에 SK하이닉스의 적극적인 인수 의지에 마음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인수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다. 특히 이번 인수계약으로 낸드 메모리에 대한 과잉 투자가 줄면서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낸드 메모리 시장에서 큰 위기를 겪었던 2007년도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이번 인수가 적어도 같은 위기를 겪지 않게 만드는 '방파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낸드 시장 점유율 상승과 낸드 산업의 경쟁구도 완화라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단 10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수비용이다. 이미 지난 2018년 낸드 시장 점유율 2위인 키옥시아에 4조원을 투자한 터다.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낸드 사업에 14조원의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게다가 인수계약도 2021년에 8조원을 지급하더라도 다롄팹의 실질적 운영권은 2025년에나 넘어오는 점도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있다.
또한 옵테인 메모리가 제외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이번 인수로 SSD판매 비중을 높이던 SK하이닉스에게는 분명 호재다. 다만 PC와 기업서버용 전체 SSD시장은 삼성전자가 30.5%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인텔은 18.2%다. 물론 기업서버용 SSD시장에서는 인털에 28%로 삼성전자(32%)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인수로 삼성전자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옵테인 메모리'와 같은 첨단기술 없이는 삼성전자의 공고한 시장점유율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디에코. 무단전재-재배포 금지]